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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아가며 꼭 한 번은 보아야 할, 경험해야 할 예술, 목판화

다감이 박아현

다감이 박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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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31일. 울산 제일 일보가 주최하고, 울산국제목판화 페스티벌 운영위원회가 주관, 울산광역시 한국 현대 목판화 협회가 후원하는 제6회 울산국제목판화 페스티벌 이 개최되었다. 이번 목판화 페스티벌에는 한국, 핀란드, 오스트리아, 체코, 태국의 유명 작가들이 다수 참여했다.

목판화 페스티벌은 울산문화예술회관의 제1, 2, 3, 4 전시장에서 열렸다. 평소 알고 있던 흑백의 단순한 목판화와는 전혀 다른 컬러풀하고 입체적이기까지 한 특색 있는 작품들이 즐비했다. 목판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산산이 부숴버린 전시회였다. 특히 ‘울산을 찍다’라는 울산을 주제로 한 목판화에서는 한국의 남유림, 박길안, 안혜자, 한효정, 이원숭, 홍진숙 작가들의 작품이 선정되었는데, 울산을 대표하는 고래와 반구대 암각화를 모티브로 한 목판화가 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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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우리 예술계의 꿈나무들의 작품도 야외에 전시되었다. 울산대학교 서양학과, 울산애니원 고등학교 창작 만화과와 애니메이션과 학생들의 목판화 작품 100여 점이 야외 전시장에서 전시되고, 야외전시장 맞은편에서는 전통 목판화 프린팅 체험교실이 열렸다. 화려하고 입체적인 목판화들이 매우 신선하고 청량감 있게 다가왔다면, 흑백의 전통적인 목판화는 안정감과 편안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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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장은 야외 체험장 이외에도 1전시장의 실크스크린 기법 체험을 할 수 있는 에코백 만들기와 제2전시실의 수성 목판화 체험 수업이 있어, 판화의 다양한 기법과 연출들을 직접 경험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리고 6월 2일. “목판화의 역사, 동시대 목판화의 동향”이라는 주제로 한국의 배남경 작가, 핀란드 의 이누 베르타넨 작가, 오스트리아의 맨프레드 애거 작가가 참가한 세미나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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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의 첫 문은 한국의 배남경 작가가 열었다. 판화라는 용어의 역사와 새로운 용어인 ‘수인’에 관해 말문을 열었다. 본래 판화라는 말은 동양에는 없었던 용어라고 한다. 한 세기만 거슬러 올라가도 판화를 그림과 분리해서 독자적인 예술 형태로 인식하지 않아 개념이 불분명하였기 때문에 쓰지 않은 것. 하지만 근대 서구로부터 들어온 개념에 마땅히 붙일 이름이 없어 한문으로 번역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신조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주체는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에서는 목판 우키요에의 번성으로 이미 판화를 지칭하는 ‘스리모노’라는 용어가 있었지만, 상업적 우키요에와는 차별화된 창작 판화를 지칭하기 위해 ‘판화’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또 다른 용어인 ‘수인’은 중국의 전통적인 기법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신조어이며, 이를 전통적인 기법에 소급 적용한 용어다. 하지만 중국은 이 수인이라는 단어를 자신들의 전통적인 기법에만 붙이는 것이 아니라, 전혀 관련이 없는 타국의 판화 작품 기법에도 수용성 잉크를 쓰는 목판 기법이라면 이 용어를 은근슬쩍 적용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의 전통기법으로부터 어떠한 수혜를 받지 않은 동아시아 작가들의 성과를 힘들이지 않고 슬쩍 걷어가는 일이 발생하고 있어, 배남경 작가는 이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한국의 전통적인 판화를 지키기 위한 한국형 고유명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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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핀란드의 아누 베르타넨 작가는 ‘전통에서 개방으로의 과정, 핀란드 목판화로 표현된 현재를 담은 과거’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이어갔다. 아누 베르타넨 작가는 핀란드 헬싱키 출신으로, 헬싱키 미술 대학에서 판화 교수직을 맡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다.

아누 베르타넨 작가의 말에 따르면 핀란드에서 목판화는 예술가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 있는 분야라고 한다. 실제로 핀란드 판화예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Akseli Gallen Kallela의 작품으로 시작해 현재까지 핀란드에서는 매우 다양한 시도와 기법들을 통해 판화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특히 판화를 설치미술에 접목 시키거나, 아누 베르타넨 작가 본인의 아주 커다란 판화까지, 형식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발상으로 핀란드만의 판화를 발전시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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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오스트리아의 맨프레드 에거 작가의 ‘목판화의 역사와 현대 목판화의 추세’라는 주제의 발표가 이어졌다. 맨프레드 에거 작가는 뒤러의 ‘코뿔소’라는 작품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판화는 뒤러가 코뿔소를 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지의 화가가 남긴 간단한 설명이 곁들어진 그림을 바탕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이유가 무엇이 됐든 이 코뿔소라는 작품은 크게 인기를 끌며 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인기가 식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목판화 역시 유럽에서 쇠퇴를 면치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17세기와 그 이후이다. 구리와 기타 금속의 판각 및 에칭 기술이 소개되면서 금속 특유의 세밀하고 정밀한 이미지 표현 기법에 목판화가 밀려났다. 결국 오랜 기간 동안 판각은 그 예술적 가치를 거의 잃어버렸고, 거의 사라져 버린 판화 기법의 형태로 전락하면서 2급 미술 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목판화가 다시 유럽에서 새롭게 주목 받기 시작한 것은 표현주의 시대였던 20세기 초반이 지나서부터였다. 20세기 초반 독일에서 처음 시작된 표현주의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이후 모든 유형의 모더니즘이 그 뒤를 이어갔다고 한다. 표현주의 화가들은 물리적인 실체보다는 정서적인 경험의 의미를 표현하고자 하는데 집중했다. 이 작품들은 섬세하고 세밀하기보다는 단순하고 매우 거칠어 보이는, 그러면서도 직접적이고 단단하고 강렬한 형식을 갖추길 바랐으므로, 이러한 특징에 목판화만 한 것이 없었다고 한다.

현재 오스트리아는 20세기 초 이후 잠깐 쇠락기를 맞았다가, 많은 화가들이 다시 목판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그래픽 대회와 행사에서 많은 목판화를 확인할 수 있다. 맨프레드 에거 작가의 발표가 끝이 나고, 곧이어 개막식이 이어졌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트럼프 합주에 행사 관련자뿐만 아니라, 전시를 관람하던 관람객들까지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귀에 익숙한 행진곡들도 있었고, 생소하지만 듣기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곡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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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합주가 끝이 나고, 울산 제일 일보의 대표의 개막 인사를 시작으로 페스티벌 공동 운영 위원장, 시장님 외에도 많은 이들의 축하 연설이 이어졌다.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자리매김하며 높아지는 위상에 대한 감탄과 앞으로의 기대가 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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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페스티벌 관련 위원들과 작가들이 모두 모여 페스티벌의 꾸준한 발전과 목판화의 밝은 미래를 바라며 테이프 커팅식을 마지막으로 목판화 페스티벌 개막식은 막을 내렸다. 개막식까지 보고 난 이후에는 꽤 멍했다. 목판화의 예기치 못한 화려함에 취한 탓일 것이다. 누구나 쉽게 듣고 배울 수 있도록 따로 세미나실을 빌리지 않고 전시실에서 세미나를 진행한 점도 너무 참신하고 마음에 들었다. 누구나 감상하고, 누구나 목판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배려가 고맙고, 기뻤다.

전시실을 뒤로 한 채 빠져나오는 걸음이 쉽지 않았다. 목판화라고 해서 매우 단순하고, 거친 것만을 상상했던 내게 굉장한 충격과 신선함을 안겨준 전시회였다. 목판화는 내 상상과 다르게 매우 섬세했으며, 청량했다. 작가들의 여러 시도와 맞물려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앞으로 더 나아가는 모습들이 확실하게 보였다. 내년에도 개최될 목판화 페스티벌이 벌써 기대된다. 지금보다 훨씬 더 알려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페스티벌이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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