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을 깨다, 전통예술 ‘타(打)’!

다감이 정세련

다감이 정세련

기획경영팀 김보창 팀장

전통을 지킨다는 건 쉬운듯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익숙한 것이라 몸이 기억하는 관습이라 쉬운 것이 당연하다. 반면 새롭게 변화하는 것에 발맞추지 않으면 도태되는 시대상을 감안하면 어렵기도 하다. 더구나 새로운 것에 흥미와 관심이 많은 젊은이에게는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전통이란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사상이나 관습, 행동 등이 계통을 이루어 현재까지 전해진 것이다. 그것도 바람직하게 여겨진 것을 일컫는다. 사전적인 풀이의 전통은 이러하나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것이라면 고리타분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구태의연, 고정관념과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하는 탓에 전통의 맥을 이르려는 젊은이가 나날이 줄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문제는 비단 예술계의 현상만이 아니다. 직업을 비롯해서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 있어서 전통을 고수하려는 젊은이를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시대를 감안한 까닭일까. 25세의 이영미 씨가 전통연희 활성화에 전력을 쏟고 있다는 사실이 신선하면서도 대견하다. 연희란 배우가 각본에 따라 말과 동작으로 어떤 사건이나 인물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보여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전통예술이란 한국의 전통적인 모든 연희를 말하는 것으로 사람들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모든 공연 행위가 해당된다. 그중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탈춤을 비롯해서 사물놀이, 줄타기 등이 모두 포함된다. 20대 젊은이가 이런 전통연희를 전공해서 평생의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격려하고 장려할 일이다. 이영미 씨가 말하는 전통예술은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라는 것이 더욱 그렇다. 감각적인 것에 익숙하고, 서양음악에 매료되기 쉬운 젊은 세대가 웅숭깊은 전통예술에 심취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문화예술진흥팀 김미경 팀장

“초등학교 때 방과 후 수업으로 사물놀이를 배우게 된 것이 계기였어요.”

순전히 자발적으로 접한 수업이다. 바이올린이나 플루트 수업도 있었지만 둔중한듯하면서도 울림이 깊은 가락이 왠지 매력적이었다. 신명이 절로 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깨춤도 들썩이게 되었지만 전공을 하리란 생각은 해본 적도 없는 시작이었다. 그러고 보면 진정한 꿈은 처음부터 작정하고 접하기보다 좋아서 할 때 좋은 열매로 영그는 것 같다.

이영미 씨의 경우도 그렇다. 좋아서 하다 보니 힘든 줄도 모르고 오늘에 이르렀다. 처음엔 사물놀이로 시작했다. 두드리는 악기들이 서로 어울려서 신명 나는 가락을 만들어내는 데 끌렸다. 본격적으로 전통 타악기를 전공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대부분의 타악기는 현악기나 관악기처럼 여러 단계의 음계가 없다. 두드리는 위치에 따라, 악기의 진동폭에 따라, 울림에 따라 내는 소리들이 어울려서 듣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타악기는 연주자에게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 많은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난타’가 좋은 예다. 이영미 씨가 타악을 전공하며 전통연희에까지 발을 들여놓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신진예술가로 인정을 받았지만 전통연희를 하면서 힘든 점은 없는지 물었다.

“전통연희 자체가 힘든 건 아직 모르겠어요. 다만 애로사항이 있다면 수입이 불안정하다는 점이죠.”

공연만으로는 생계 해결이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이란다. 그나마 부모님의 도움 없이 활동에 필요한 경제적인 문제라도 해결하려다 보니 예술강사 활동을 병행할 수밖에 없다. 모든 예술인들의 바람처럼 이영미 씨도 작품과 창작공연활동에만 전념하고 싶다. 작품이나 창작공연은 열정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노력이나 열정만큼 중요한 것이 시간이다. 그러나 연습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잠을 줄여가면서 연습에 몰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다만 쉽게 지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지치지 않는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즐거움 덕분이다. 이런 즐거움은 일로써 생기는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이영미 씨는 무대에 서면서 스스로를 재인식했다고 한다. 스스로는 수줍음이 많아서 대중들 앞에 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스타의식이 있다는 생각은커녕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2014년 울산문화예술회관의 정기공연 때 첫 무대에 선 이후 자신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주목 받는 것을 무엇보다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큰일을 맡아서 조명을 받을 때의 희열은 일상까지 들뜨고 설레게 한다.

이영미 씨는 젊다. 솔직하다. 그만큼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잘 꿰고 있다. 자신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시원하게 인정한다. 맹연습만이 무대의 조명을 뿌듯하게 받는 길이라는 것도 잘 안다. 때문에 연습을 할 때도 늘 산을 넘는다는 생각으로 임한다. 지독한 연습 끝에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는 순간을 인정받을 때의 환희는 무엇으로도 형언하기 힘들다. 그런 순간 다음에 만날 산은 두려움보다는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지로 다가선다.

이영미

“2014년, 그때는 대학생이었죠. 성남동 소극장에서 장기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헤브 어 굿 타임(Have a Good Time)’이었는데 그때 지적받은 것이 표정 부족이었어요.”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 언제인가를 물었을 때도 이영미 씨는 자신의 부족했던 부분부터 말한다. 장기 공연 때 들었던 지적이 자신을 연습벌레로 만들었단다. 졸업연주회를 준비하면서 거울을 앞에 두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표정이 풍부했다는 칭찬을 듣게 된 것이다. 그때의 뿌듯함은 또 다른 노력의 자양분이 된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극복한 것을 인정받을 때야말로 가장 보람된 순간이다.

내드름연희단의 올해 공연에서 이영미 씨가 맡은 역할은 소고춤과 징잡이다. 원래 역할은 장구 잡이지만 단체 공연에서는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공분야가 아니어서 정말 힘들겠다는 말에 이영미 씨는 다른 의견을 낸다. 전공이 오히려 더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무의식중에 전공분야를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작용하는 것 같고, 전공분야인데 비전공분야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수반되는 것 같단다. 물론 이런 생각이 비전공분야의 중요성을 외면한 것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인다.

이영미 씨는 현재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의 방과 후 프로그램에 예술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사물놀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나날이 늘어나는 추세다.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자신처럼 시작은 사물놀이로 하지만 학생들이 전통연희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도한다. 아무려나 전통연희를 알고 싶은 학생들이 늘고 있는 현실은 고무적이다. 자신의 작품에만 전념하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을 위로받을 수 있고, 후진 양성의 보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을 깨는 신진예술가들 덕분에 우리의 전통예술의 미래는 한없이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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