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재단

거리로 나온 문화예술에
울산의 어깨가 들썩!
‘2019 제53회 처용문화제’, ‘거리공연 지원사업’을 보고

화련공연단


제53회 처용문화제가 '처용, 울산을 품다'를 주제로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남구 달동 문화공원 일원에서 열렸다. 올해는 울산문화재단이 만반의 준비를 갖춘 덕분에 처용 관련 공연 콘텐츠를 대폭 확충했고, 행사장 구성도 세분화됐다. 과연 처용문화제는 울산을 품어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했을까?

Intro

처용 설화

처용암이 생겨난 곳에는 신비한 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옛날 신라 49대 헌강왕이 울주 바닷가로 행차했다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구름과 안개에 갇혀 길을 잃었는데, 천문을 살피던 일관이 “대낮이 졸지에 캄캄한 어둠으로 바뀐 것은 동해의 용이 조화를 부린 것”이라며 “뭔가 좋은 일을 베풀면 풀어질 것”이라고 아뢴다.

이를 전해 들은 왕이 용을 위해 근처에 절을 지으라고 명하자 구름과 안개가 씻은 듯이 걷혔다. 기분이 좋아진 용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와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며 왕의 덕을 칭송하였고, 한 아들을 딸려 보내 왕을 보좌하게 하였는데, 그가 바로 처용이다.

왕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하는 처용의 마음을 붙잡아두기 위해 절세미녀를 뽑아 짝지어주고, 급간 벼슬을 내렸다. 그러나 아주 아름다운 처용의 아내를 연모한 역신(疫神)이 처용으로 변해 몰래 동침을 하였다. 이를 본 처용은 노하지 않고 춤을 추며 노래하자, 역신이 그 도량에 감격하여 “공의 얼굴을 그린 것만 봐도 그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이후 세간에는 처용의 얼굴을 문에 붙여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경사를 맞아들이는 풍습이 생겼다.

화련공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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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처용의 노래와 춤이 `처용무`로 만들어져, 악귀를 몰아내고 평온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궁중에서 공연되었다. 이후, 처용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어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처용암은 울산시 남구 황성동 세죽마을 앞 개운포 한가운데 떠 있는 바위섬이다. 19.83㎡가량의 아주 작은 바위섬으로, 이 바위에서 처용이 나타나 ‘처용암’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동백과 참등나무 등 사철 푸른 나무로 뒤덮여 절경을 자랑하는 목도(천연기념물 제65호)가 지척에 있어 볼거리 많은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what is

처용문화제

그동안 울산시 대표축제는 1967년 울산공업축제로 시작해 20회까지 많은 기업과 시민들의 사랑과 참여 덕분으로 성황을 이루었고, 시민 결속과 화합을 끌어냈다. 그러나 시대 변천에 따라 산업의 역기능인 공해, 환경 문제와 노동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시민축제로 명칭을 바꿨다. 그러다 1991년 마침내 ‘처용문화제’라는 이름으로 개칭하여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울산의 대표축제이다. 문학과 음악, 춤과 연극이 한데 어우러진 ‘처용설화’는 한국 예술사 속에서도 대표적인 종합 예술 모델로 손꼽히는데, 1100년의 역사를 가진 처용설화를 배경으로 열리는 문화축제인 만큼 각종 문화, 예술, 체육 행사가 열린다. 매년 가을, 처용전승설화의 근원지인 처용암에서 열리는 ‘처용맞이 고유제’를 시작으로 울산과 더불어 숨 쉬어온 역사적 인물인 처용을 통하여 관용과 용서, 화합의 정신을 계승, 발전하려는 울산 시민들의 바람을 담고 있다

궈번치 지휘자

궈번치 지휘자

how about

제53회 처용문화제

사실 처용문화제는 그동안 윤리적, 종교적 관점에서 냉철한 평가를 받기도 했고, 독창성 있는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문제점을 지적받으며 수년간 시행착오를 거쳤다. 이에 울산문화재단은 올해 처용문화제의 운영 계획과 실행에 더 많은 정성을 쏟았다.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상시 체험과 시민 참여형 축제 확대, 융·복합 방식 콘텐츠 다양화, 공모와 경연을 통한 축제의 질적 향상, 기존 콘텐츠의 재해석, 사전 홍보를 통한 시민 참여 확대에 무게를 뒀다.

개폐·막 공식행사와 처용문화제 정체성을 부각하기 위한 콘텐츠로 마련되는 대표 프로그램과 구·군 문화원 중심으로 운영되는 울산민속예술 대표 선발 경연 등 전통민속 프로그램을 전년도와 같이 개최하기로 했다. 일반 시민과 각 문화원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형식으로 구성해나가기로 했다. 아울러 가족 방문객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에 역점을 두고 새로운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했다. 향토성과 예술성, 대중성.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축제의 중심에는 울산의 중요한 문화자산인 처용을 세우는 걸 잊지 않았다.

하지만 자칫 ‘처용문화제’라는 이름이 ‘처용’이 아닌 ‘문화제’에 방점이 찍혀 있어서 종합문화행사가 될 수밖에 없을 지도 모를 위험성도 도사리고 있었다. 과연 울산문화재단은 축제의 질적 성장과 지속 가능한 축제로 보존하기 위해 제53회 처용문화제는 무엇을 보여줬을까?

화련공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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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처용암에서 고향을 그리는 시민들과 함께 '처용맞이 제의'로 막을 올린 처용문화제는, 이후 우천으로 첫날 일부 프로그램이 취소됐지만 처용맞이 덕인지 주말 이틀 동안 청명한 가을 날씨 속에 다양한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남구 달동 문화공원 일원에 열린 이번 축제는 공연장인 중심무대, 플리마켓과 예술체험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는 처용시대(5개 구·군 문화원 공간), 그리고 다채로운 놀거리와 볼거리가 가득한 먹거리존, 시민문화마당으로 꾸며졌다.

축제현장에서 만난 올해 포스터와 각종 홍보물부터 이색적인데, 올해 시민문화마당 공모를 통해 참여한 <처용연구회> 작가들이 앞서 울산 일대에서 처용탈을 매개로 전개한 다양한 작품 중 하나를 기반으로 탄생했다. <처용연구회>는 이번 처용문화제에 작품 전시와 축제 속 사진관(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은 물론, 작품 중 하나(<무룡산 위 처용> - 한현철 作) 를 포스터 등 주요 홍보물 이미지로 제공하였다. 그야말로 홍보에서 현장 프로그램까지 모든 곳에 시민들의 손길이 닿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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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 창작한마당 전국 경연’에서는 전국 7개 도시와 일본의 교토 등 8개 전문 무용 단체가 참가해 펼쳐 수준 높은 안무와 기량을 선보인 중심무대에서는 관람객들의 탄성이 끊이지 않았다. 전통 무용의 원형은 창작 안무를 만나 더욱 열정적인 에너지를 뽐내게 되었고, 관객들은 생동감 넘치는 무대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올해 새롭게 도입한 <시민문화마당>에는 국립민속박물관의 AR민속체험, 울산미술협회 어린이 사생대회 등 기관·단체 초청프로그램 외에도 시민들이 직접 기획·참여하는 다양한 활동들이 펼쳐졌다. 이 가운데에는 울산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과정(UCGA) 출신들도 대거 참여해 울산청년문화단체 <아트시그널>과 <청년문화기획단 9012>가 함께 진행한 창의예술교육 체험 프로그램 ‘골라 골라 예술상점’, 2019년도 기획자 양성과정을 수료한 새내기 기획자들은 '처용유사–친구야 처용문화제 가자'(김지숙, 김유리 외)과 '처용 역할극 체험'(이소영 외), '과거시험 스탬프 투어'(조이랑, 김유리 외) 등 신선한 프로그램을 선보여 가족 나들이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이외에도 올해 새로 도입한 프로그램 중에는 축제 속 어린이집 '엄마, 아빠 저도 함께해요'(김가람 외)가 있었다. 현장에서 일하느라 육아를 제대로 챙기기 어려운 기획자와 스태프들의 자녀(4~10세)들을 대상으로 돌봄교실과 축제 체험현장 투어 등을 진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이다. 또한, 아기자기한 상품을 판매하는 플리마켓에도 다양한 판매자들이 참여하였으며, 시선을 사로잡는 체험부스가 모여 있는 시민문화마당은 유례없이 많은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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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19일)부터는 5개 구·군 문화원의 역할이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생활문화동호회 회원들이 모여 '처용놀이마당' 경연을 펼친 것은 물론, 해당 경연 우승자인 농이예술단(북구, 대표자 류경열)이 다음날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식전 공연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19일 저녁에는 창작 처용콘텐츠 공모로 선정된 김진완무용단의 ‘환타지 처용아리II’가 식전행사로 펼쳐졌다. 특히 ‘주제공연은 퍼포먼스와 미디어아트, 비보이, 전통무용과 전통연희가 어우러지는 창작 3부작(소명-천년의 춤-천년의 사랑)의 융·복합형 무대공연으로 울산공연예술단체가 대거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마지막 날 처용문화제의 피날레를 장식한 대동놀이는 '처용놀이마당'과 처용시대(5개 구·군 문화원 체험공간)를 이끌었던 5개 구·군 문화원 식구들과 울산시민합창단, 5개 구·군 풍물단 및 울산연합풍물패 등 600여 명의 출연자 외에 다양한 인사들이 함께 행사장 입구에서 주 무대까지 흥겨운 풍악을 울리며 문화공원 일대를 대화합의 장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렇게 제53회 처용문화제는 ‘처용, 울산을 품다’는 슬로건 그대로 모든 프로그램 하나하나가 울산시민의 애향심과 문화적 자부심으로 만들어졌으며, 시민의 호응과 참여로 완성되었다. 올해 처용문화제에서 돋보였던 사실은 더는 ‘보는 축제’가 아니라 ‘하는 축제’로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시민들이 처용이 되어 노래하고 춤추는 공간이 되었던 것이다. 시민의 손으로 만들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에서 일상 탈출의 자유가 느껴졌고 당장 처용을 울산으로 데려온 듯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내년, 그리고 앞으로도!

천 년 전, 울산 곳곳에서 그랬듯이 울산시민들의 부정과 불의에 맞서는 신명 난 처용 놀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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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처용문화제

전통문화콘텐츠 중 ‘처용’은 예술가들의 창작의욕을 자극하는 요소를 다수 가지고 있다. 신라 시대부터 전해져오는 향가는 호국적이고 참불적인 내용이 주였지만, 남녀의 삼각관계를 다룬 ‘처용가’(《삼국유사》권2 〈처용랑망해사조〉)는 많은 예술 및 문학가들의 영감을 불러왔다. 처용설화, 노래로 부르는 처용가, 춤으로 전달하는 처용무 등 다양한 모습으로 전해져 오는 ‘처용’은 이런 매력적인 아이콘으로 자리 잡아 그동안 드라마, 발레, 무용, 오페라, 축제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작품들로 탄생된 바 있다.

‘처용’이 회자되고, 상기 되는 힘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우리의 손에서 만들어진 ‘처용문화제’가 스스로 정체성을 갖고 생명력을 갖기 위한 조건이 단순히 처용의 노래와 춤, 얼굴만으로 충족된다고 할 수 없다. 세기를 넘어서도 ‘처용’이 유효할 수 있는 까닭은 우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고유의 장단과 선율, 설화 속 영웅에 대한 2차 해석 때문일 것이다.

결국, 긴 생명력을 가진 ‘처용문화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시민성과 정서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 전통적인 모티프를 현대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이 전제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예술적 요소들은 결국 사람으로 시작되어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점이다. 사람이 만들어나가기에 더욱더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전문적인 지식과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통해 완성해 나가는 것은 ‘처용문화제’에 꼭 필요한 과정이다.

화련공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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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문화와 예술, 축제를 만들고, 이렇게 만들어진 문화는 다시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돌아온다. 아무리 좋은 음악과 춤이 있더라도 그것을 실행할 사람이 없다면, 예술은 무의미하다. 그리고 그 문화와 예술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많은 기획자와 제작자와 관람객이 있어야 가능하다. 단원 없는 단체는 색을 찾기 힘들고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도 없다. 좋은 ‘처용문화제’를 위해 울산시와 울산문화재단, 울산 시민들에게는 앞으로 어떠한 과제가 남았는지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what is

거리공연 지원사업

지난 19일 남구 달동 문화공원 일원에서 ‘처용문화제’가 열리고 있을 무렵, 성남동의 시계탑 사거리에서는 우리의 전통국악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길거리’라는 일상의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를 관객으로 만나는 거리공연이다.

가을볕이 따스한 주말 오후. 거리를 걷던 시민들은 우연히 예술을 선물 받게 되었고, 연주자들은 자신의 음악의 일부가 된 관객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최근 전국적으로 이러한 거리예술이 하나둘 점점 확산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

울산문화재단에서도 처용문화제와 더불어 ‘거리공연 지업사원’을 통해 거리 예술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화련공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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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거리공연 7회 차로 초대된 뮤지션은 2019 울산재즈페스티벌 참가팀인 최창근(BBJQ밴드), 빅토리아대학교 재즈 피아노과를 졸업해 정규 1집 ‘Daily Issues’를 발표한 홍진표 피아노 트리오, 순수 민간인들로 구성된 재즈밴드 모던사운즈다. 그들이 지금껏 올랐던 어떤 무대들보다 작지만, 어느 때보다 관객들과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묵직한 드럼 비트와 화려한 피아노의 조화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그동안 재즈 음악은 폐쇄된 공간에서 우아하게 듣는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나온 재즈는 격렬한 연주 속 풍부한 서정적 색채를 뿜어냈다.

가을바람에 실려 먼 곳까지 날아간 음악은 성남동의 거리를 가득 채웠고, 조용히 또 집중해서 재즈 음악의 감상하는 관객들의 모습은 신선하고 색다른 장관을 연출했다.


이어서 관현악 연주자들이 합주를 시작하자 음악과 몸짓은 더욱 격정적으로 치닫고, 관객들의 환호와 감탄 소리도 더욱 높아졌다. 음악을 들으며 손으로 리듬을 타는 관객도 있었다. 쏟아지는 강렬하고 탄도 높은 재즈 선율은 스펙터클을 넘어 청각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예술성과 대중성. 교집합이 없을 거 같은 두 분야지만 둘 사이의 접점을 찾기에는 거리 예술만큼 좋은 공연이 또 있을까? '타협하지 않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는 재즈 음악의 시작과 울산 거리예술의 시작도 많이 닮았다. 향유하는 문화예술의 맛만을 따라 열정을 쏟았기에 더 가까이, 또 가슴 깊이 와 닿았던 것이 아닐까.

다만, 이 거리공연 지원사업이 일회성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과 정착, 지원이 있어 오늘 거리 공연석을 채워준 관객들처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더 찾아주기를 바란다. 제한을 없애고 즉흥성, 유연성을 통해 세상과 소통했기에 더없이 자유롭게 느껴졌던 거리 공연. 우리의 일상에 거리가 없으면 안 되듯, 거리 공연 또한 그러한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