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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유형문화재 제1호 동헌 및 내아

울산시의 유형문화재 제1호 동헌 및 내아는 1681년(숙종 7) 울산부사 김수오(金粹五)가 처음 지었으며
그의 아들인 부사 김호가 일학헌(一鶴軒)이라 편액하였고 1763년(영조39) 부사 홍익대가 중창하여 반학헌(伴鶴軒)이라 개칭하였다.

*편액: 종이, 비단, 널빤지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것

옛 울산읍성 안의 중심 건물로써 울산도호부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였던 곳이며 내아는 수령이 살았던 살림집을 의미한다.

1997년 10월 9일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던 동헌 및 내아는 현재 중구 동헌길 167에 위치해 있다.
성남동 문화의 거리 위쪽으로 올라오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정확하게 북정동 우체국 옆이 바로 동헌의 입구다.

문화재로 남아 이제는 그 기능을 상실하였지만 옛날에는 매우 중요한 시설 중 하나였고 지방관리가 공무를 집행하던 관청 건물이였다. 오늘날 동헌 및 내아는 문화재로써 관광명소 중 한 곳으로 자리 잡고 2012년부터는 ‘울산 도호부사 행차’라는 전통재현행사도 매해 열리고 있다.

동헌의 정문 가학루(駕鶴樓)

울산의 대표적인 관아이며 현재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관아 이기도 한 울산동헌의 입구는 일제시대 때의 사진을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견하여 복원하였다.
정문의 이름은 가학루(駕鶴樓)

2017년 12월 복원된 가학루는 시간을 알리고 유사시 긴급 상황을 알리는 기능을 하였는데, 1600년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847년 가학루가 무너질 위험이 있어 허물었다 하였고, 1859년 도호부사 이충익이 다시 중건하였으며 1930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소실된 것으로 알려진다.

가학루는 팔작지붕의 층층누각으로 2익공 양식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모로단청을 올린 형식으로 2층 마루에는 대북이 설치되었으며 가학루의 현판은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보관했던 사진을 그대로 전사하여 제작되었다.

동유일하게 남은 관청 반학헌

동헌 반학헌(伴鶴軒)의 규모는 앞면 6칸, 옆면 2칸, 가운데에 2칸의 대청을 두고, 좌우로 2칸씩의 방을 두었다.
울산이 부, 현, 도호부 등으로 위치가 격상, 격하 될 때마다 폐쇄와 신축을 거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동헌 본 건물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관청건물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울주군청의 회의실로 사용하다가 1981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현재까지 유지가 잘되어있고 상징성 있는 건물로써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시절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가까이서 볼 수 있기에 충분히 동헌을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다. 또 1:1 사이즈 인형을 배치하여 분위기까지 그 시절을 연상케 한다.

밤에 보는 동헌은 또 다른 느낌인데 아름다운 조명이 비추는 옛 기와식 건물이 영화 속 사극 한 장면을 연상하게 한다. 동헌 근처를 사는 시민들은 산책 겸 동헌을 방문하여 더위도 가시 고 운동도 하는 장소로 많이 찾는다 한다. 현장 방문을 할 때 마다 어르신들이 햇빛을 피하기 위해 많이들 동헌을 찾아오셨다.

잔디부분과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을 깔끔하게 정리해놓았기에 걷는 동선이 힘들지 않다. 편안하게 걸을 수 있기에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다.

수령이 살았던 살림집 내아(內衙)

동헌에는 정무를 보는 건물과 더불어 내아를 두었는데 당시 수령들이 거주하고 가족들이 지낸 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8칸 규모의 ㄱ자형 건물로, 온돌방 3칸, 대청 2칸, 부엌, 누마루가 각 1칸씩 구성되어 있다.

옛 살림집을 보면 담이 있기 마련인데 동헌의 내아는 담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담이 없는 모습이 어색하기도 하다. 내아의 크기가 제법 커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동헌의 내아를 더 자세히 알아보니 향리들의 업무 공간이기도 했던 내아였다. 내아는 전형적인 울산지역 상류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어 상당히 고급진 건물이다.

향리: 지방 행정실무를 담당하였던 최하위 관리

사리탑과 31개의 비석군

울산에서 부임했던 수령들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31개의 비석이 동헌 뒤편에 마련되어 있다. 어떤 사람들이 부임했는지 비석 앞에 설명을 해놓았다. 비석들 사이에는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도 있는데 이는 보물 제441호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석종형 탑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물론 동헌에 있는 탑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울산박물관에서 만나 볼 수 있다.

효자 송도 선생 정려비

동헌 안에는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10호로 지정된 효자 송도 선생 정려비가 있다. 조금 거리가 있어보이는 이 정려비는 사실 애틋한 이야기가 있는데 송도 선생은 연안군 송광언의 후손으로 세종실록에 그 효행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울산지역 최초의 생언으로 병든 부모를 10여년 동안 정성껏 간호하였으나 일 년 사이에 부모 가 잇달아 돌아가시자 몸소 흙과 돌을 다져 무덤을 만들고 사당을 세워 유교식 예법에 따라 제를 지냈다 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된 조정에서 세종 1년(1428년) 효자로 정려되어 표창을 받게 된다.

제를 지내는 사당처럼 되어있어서 울산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형식이기도 하며 그 안을 들여다 보면 비신이 하나 있다. 전면에는 효자성균생원 송도지려(孝子成均生員 宋滔之閭)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고 후면에는 그의 효행을 기록했다. 건립된 연대는 비문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숙종 38년(1712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헌을 느껴본 후

울산에는 도심 내에 다양한 문화재가 숨어 있다. 높은 빌딩들 사이에 보이지 않을 수 있는데 의외로 옛 전통건물들이 잘 자리 잡아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동헌 또한 마찬가지로 도심 내에 있지만 동헌 안은 어느 곳 보다 고요하고 옛 정기가 느껴지는 아늑한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고 있어 문화재가 퇴색되어 보인다거나 정비가 안 되어 있어 어수선 해 보인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만큼 울산시에서 문화재를 잘 보존해주고 있고 다양한 행사를 통해 활기가 돌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제 문화재는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어주기도 하고 또 옛 정기를 느끼게도 해주는 하나의 공간으로 우리와 동화되어간다.

갑자기 그곳에 새로운 문화재가 생겨나는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우리와 함께 자리잡아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 시대를 살았던 선조들에게 일상이자 문화였던 공간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하나의 쉼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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