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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울산 월드뮤직페스티벌 & APaMM 만유기

다감이 윤경희

다감이 윤경희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늦여름, 카더가든의 ‘Bushcoick’ 과 ‘섬으로 가요’를 듣기에 딱 좋은 날이었어요. <2018 울산월드페스티벌 & APaMM> 3일간의 일정에 밀려났던 일상으로 발 디밀기 전, 공연장에서 샀던 카더가든의 앨범을 뒤적이고 있답니다. 공연장의 여운을 잠시나마 더 붙잡아두고 싶어서요.>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 공연 전경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 공연 전경

‘세계를 위한 한국음악, 아시아 음악의 내일’이라는 타이틀로 울산 월드뮤직페스티벌과 APaMM(8. 31. ~ 9. 2.)이 태화강대공원에서 열렸답니다. 메인카메라와 관람석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양쪽 무대에서는 번갈아가며 스물다섯 팀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기량을 마음껏 뽐냈고, 물론 덕분에 관람객들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흠뻑 취할 수 있었어요.

이번 축제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월드뮤지션들을 통해 각국의 전통 리듬과 멜로디를 경험할 수 있었던 거에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온 리듬레벨스는 제 키의 두 배는 됨직한 디제리두(관악기)를 부는데, 연주 방식과 소리, 리듬이 매우 독특해서 원주민축제에 참여한 것 같은 느낌까지 받았거든요.

맨발로 무대를 종횡무진 하던 작은 체구가 눈에 선하네요. 그때 뿜어 나오던 힘과 끼를 떠올려보면 가장 전통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연주였다는 생각도 들어요. 샤미센과 거문고, 퉁소로 일본의 정서를 보여준 모토키 모리나가의 연주도 독특했어요. 전통악기와 현대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가장 괜찮았던 무대는 대미를 장식했던 잠비나이의 무대였습니다.

월드
월드

해금과 피리, 거문고와 전자기타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악기의 조합도 흥미로웠고, 한국인이라면 느낄 수 있는 고유의 소리와, 헤비메탈의 격렬하고 폭발적인 소리와 리듬에 곁들인 퍼포먼스는 삼일 동안 열린 축제에서 단연 압권이었어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뮤지션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무대를 경험하고 나니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무대까지 들이치던 비를 불사하고 수건으로 악기를 닦아가면서도 끝까지 좋은 연주를 선사한 아티스트들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어요.

에이팜

세계로 도약할 준비가 끝난 APaMM 참가자들의 연주를 빼놓을 수가 없군요. 가야금과 전통 타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듀오벗의 현대적인 느낌의 연주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전통 국악뮤지션 클랜타몽은 소리꾼과 치고, 때리고, 부는 소리를 얹어서, 살풀이와 전통굿을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를 선사했어요. 현대적인 메시지를 담은 퍼포먼스는 보는 이들의 오감을 자극하는 멋진 무대였습니다.

참, 두 명의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이 결성한 앗싸는 이미 경계를 뛰어넘은 세계적인 뮤지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앙아베 켈레나’는 아프리카어로 ‘하나가 되자’라는 말이라고 하네요. 아프리카 전통 타악기에 기타, 베이스, 드럼이 어우러지는 노래엔 알아듣기 힘든 온갖 소리가 오갔지만, 그 속에서도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이 뭔지는 알 것 같았습니다. ‘앙아베 켈레나’ 아니겠어요?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혀'우리'는 안중에도 없이 첨예한 갈등이 이어지는 이 시대를 향해 ‘앙아베 켈레나’를 외치고 싶네요.

월드

이번 축제를 통해 저도 젊은 감성에 한발 다가갔다고 자부하는데요. 카더가든이나 혁오밴드, 이디오테잎의 음악에 푹 빠져들게 되었거든요. 그들이 무대에 오르기 한 시간 전부터 맨 앞자리를 차지한 열성팬들이 있어 말을 걸어봤더니 서울, 대전, 대구에서 그 먼 길을 마다않고 오빠들을 응원 왔다고 하더라고요.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오빠를 외쳐대는 그들에게 밀려 어른으로서 약간의 반감이 없지 않았는데요.

이디오테잎

첫날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이디오테잎(IDIOTAPE)

막상 밴드의 연주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도 연주에 푹 빠져들어 나도 모르게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지 뭐에요. 그뿐인 줄 아세요. 팜플렛으로 손바닥을 치다 못해 발을 구르고 목청껏 오빠를 불렀어요. 연주가 끝나자마자 앨범 파는 곳으로 달려가 음반 몇 장을 손에 넣었습니다. 오늘 오전 내내 유투브에 올라온 밴드의 동영상을 검색해 들었습니다. 역시 음악은 남녀노소 국적을 초월하여 소통할 수 있는 만국공통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딱 한발만 앞으로 디디면 그 세계가 열립니다.

아, 참! 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네요. 공연장 구석구석 주최 측의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모여 공연을 감상할 수 있도록 나무 판넬을 준비한 세심함이나 비닐우비와 돗자리 지급도 고마웠지만 팜플릿을 어찌나 잘 만들었는지 빳빳한 코팅지에 그어놓은 선을 따라 접었더니 손부채도 되고 하도 견고해서 공연일정 3일 내내 열정에 못 이겨 그렇게 손바닥에 대고 쳐댔는데도 손상 하나 없이 멀쩡합니다.
가장 감동 받은 부분은 여성만의 공간 파우더룸을 마련해준 것이 아닐까싶어요. 비 맞고 먼지를 뒤집어 쓴 매무새를 가다듬느라 자주 이용했답니다. 참, 푸드트럭도 있네요. 여느 야외공연장처럼 식당가까지 가는 거리가 꽤 멀었는데, 미처 먹거리를 준비해 가지 못하더라도 사흘 내내 푸드트럭을 아주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었어요. 그때마다 골라먹는 재미도 있었고, 저녁에는 가족을 축제장으로 초청내 푸드 트럭에서 산 치맥으로 꼬리를 감고 있는 여름밤을 즐겼답니다. 말그대로 라스트 바캉스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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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내내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신경 쓰였지만 다행히 시작과 끝에 약간의 비로 그쳐서 다행이었습니다. 관람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땡볕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환경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싶어요. 무대 맨 앞에서 느긋하게 연주를 즐길 수 있었던 것도 좋았구요. 하지만 연주자나 행사주관 입장에서 보면, 관람객이 적어 마음 졸였을 터이고 따라서 축제장 분위기가 가라앉을까봐 노심초사하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축제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션은 온몸이 젖도록 열정적으로 연주했고 관람객들은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그들과 하나가 되어 즐겼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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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문화마당 전경

느티나무 광장에서 열린 청년문화마당을 마음껏 즐기지 못해서 아쉬웠답니다. 첫날은 조금 일찍 간 덕에 플러그인의 오픈스테이지에 관람자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탓에 두 서너 명의 관람객이 전부였어요. PS듀오의 기타와 클라리넷 연주에 노래를 곁들인 무대였는데, 매우 아름답고 서정적인 연주에 관람객이 적어 안타까웠어요. 연주자 입장에서 보면 한 사람의 관람객도 아쉬웠을 텐데, 다음 일정 때문에 저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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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픈스테이지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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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작가들의 기획전시 중 <흔적교환소>

오픈 스테이지는 1시부터 4시까지였는데 두 시 반에 메인 무대에서 공연이 있었으니 그 이후로도 그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멈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네요. 한평시네마는 두 번이나 들렀지만 허탕을 치고 말았답니다. 흔히 보기 어려운 독립영화라 매우 호기심이 일었는데, 상영시간을 맞추기가 어렵고 메인무대 공연과 겹치는 바람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네요. 후일담을 들어보니 날씨가 맑을 때 찾았던 관객들은 아기자기한 체험을 하고 돌아갔다고 하니 다행이었습니다.

울산청년작가 기획전 ‘아트시그널’은 매우 작은 공간이었고 전시작품도 적었지만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사람들의 참여를 이루어지는 ‘흔적교환소’는 참 특이했습니다. 거기에 전시된 어떤 사람의 물건과 그 물건에 곁들인 한 마디는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더군요. 누구든 ‘흔적교환소’ 앞에 서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 하나를 내어놓고 거기에 이유를 곁들여야 합니다. 저도 가방을 뒤져 일회용 마스크 한 장을 내어놓고 사연을 한줄 얹었습니다. 그것이 다른 장소에 옮겨져서 누군가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즐거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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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과 APaMM(아시아퍼시픽뮤직미팅) 축제에서 현대음악의 트랜드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새로운 것을 접하기보다 익숙한 것에 안주하고 싶은 세대는 아무래도 록이나 재즈, 알앤비 음악 등 리듬이 강한 음악에는 정서적 공감을 가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노랫말이 주는 서정적 분위기를 좋아하다보니 자연히 고전음악이나 포크송에 젖어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트랜드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지요. 이번에 세계를 아우르는 트랜드를 접하고 나니 한껏 젊어진 느낌이에요. 그리고 음악에는 나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나이가 들수록 생체리듬이 느려지고 거기에 맞춰 살다보니 마음도 함께 늙어간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번 APaMM에 참가한 팀 모두가 델리게이트의 주목을 받아 앞으로 세계 곳곳에서 한류열풍을 일으켜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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